디지털 데빌 사가 -아바탈 튜너- 총평: 上

디지털 데빌 사가 -아바탈 튜너- (이하 디데사)에 대한 소식이 발표된 것은 진 여신전생 3 녹턴 매니악스가 발매되던 시점이었습니다.

긴 기간 동안 외전 노선을 걸어오던 여신전생 시리즈는 마침내 정진정명의 본편에 해당하는 진 여신전생 3의 타이틀로 정면승부를 걸었고 이는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냈습니다. 기존 팬들에게는 물론 이전에 이 시리즈를 접하지 못했던 유저들로부터도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어서 녹턴의 완전판에 해당하는 매니악스 발매. 팬들의 만족감과 기대는 그야말로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고, 신(新) 여신전생이라는 타이틀 하에 발표된 디데사에 뜨거운 관심이 쏟아진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그리고 약 반년이 지난 지금, 디데사의 1주차를 클리어한 현재의 심정은

참담합니다.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대체 어쩌라고!!

입니다.


1. 시스템


디데사의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전투 및 던전 이동 등은 전작인 녹턴의 것을 그대로 유용하면서, 캐릭터나 성장 등의 부분은 새로운 요소를 도입하였습니다. 녹턴의 시스템은 대단히 경쾌하고 편리하며 재미있으며 스릴있는 플레이 환경을 제공하는, 대단히 완성도 높은 걸작이었지요. 거기에 전작의 이런저런 헛점(?)을 보완하겠다는 의도가 보이는 수정이 가해졌으니 그야말로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준 격, 전작 이상의 완성도를 갖는 궁극의 시스템이 되었...어야 할 터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지루하더군요.

몸은 정직한 것이, 예전처럼 악착같이 달라붙어서 하고 싶다는 의욕이 안 생깁니다. 심지어는 한참 플레이하고 있는 와중에도 꾸벅꾸벅 졸기도.... 약 10년에 걸쳐 다양한 RPG를 해왔지만, 보스전에서 졸면서 싸우다가 전멸해본 경험은 이번이 처음입니다-_-

디데사 플레이 초기에 소감을 언급하면서 '녹턴에서의 전투의 늘어짐~' 운운하는 망발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2주차 후반에서 초강력 파티로 엔딩 부근의 던전을 쓸고 다니던 시절의 기억에 의존한 어이없는 오류였지만, 이를 곰씹어보다 보니 깨달은 게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2주차까지 진행하면서 즐길만큼 충분히 즐긴 후 한턴에 메기드라온을 세번씩 MP 걱정없이 날릴 수 있는 무적의 파티로 나른하게 진행하던

때와,

처음 시작해서 새로운 요소들을 막 익혀나가는 흥미진진해야 할

때의 재미가 비슷한 수준이라는 겁니다. 물론 이것은 전작을 하면서 익숙해진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겠지요.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우선 악마와의 교섭의 폐지. 이 점은 초기부터 불안 요소로서 지적되었던 바 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강력한 적을 만났을 때 플레이어의 반응은 다른 게임에서와는 조금 다릅니다. '저놈 정말 강하네' 하고 경악과 분노를 느끼는 한편 '한번 꼬셔서/만들어서 써먹어봐야지'하는 호기심과 기대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을 걸면 각자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기에, 회화 그 자체도 충분한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여신전생에서의 악마들이란 단지 미워해야 할 적들이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군요.

그러나 디데사에서의 악마들은 평범한 몬스터에 불과합니다. 그저 앞길을 막아서는 장애물이고 때려잡고 먹어치워서 경험치와 AP와 돈을 벌기 위한 먹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요. 동료 악마라는 개념이 없는 페르소나에서도 최소한 교섭은 가능할 수 있게 해놓았지만, 이제 적으로 등장하는 악마들과 교감을 느낄 수 있는 수단은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게다가 악마의 그래픽 자체는 녹턴 시절과 거의 동일하기에 이 괴리감은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보스전에서는 디데사로 넘어오면서 행한 '보완'이라는 것의 실체를 볼 수 있습니다. 확실히 보스들의 특성을 살린 기발한 전투 방식들은 상당히 공을 들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는 웬지 유치한 과시욕이 느껴지는군요. 이를테면

"자~ 여러분, 우리가 만든 멋진 보스의 화려한 전투 방법을 마음껏 구경하세요~ 대단하죠? 강력하죠? 구경 다 했으면 괜히 발악하지 말고 리셋해서 패턴에 맞춰서 파티 세팅한 뒤 시원하게 때려잡으세요. 그러라고 세이브 포인트도 많이 만들어 놓았으니까요"

이런 식이랄까요.

물론 미리 알고 준비하면 훨씬 쉬워진다라는 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이번에는 좀 그 정도가 심합니다. 이전에는 색다른 전투방법을 다룬 보스의 위용에 고전하더라도, 미리 기본 이상으로 편성해둔 파티가 있다면 악마들을 적절히 교체해가면서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섯명의 캐릭터를 돌려가면서 써야 하는 디데사의 시스템 하에서는, 보스에 대비해서 세팅을 잘못 하면 전멸은 안하더라도 전투가 굉장히 짜증나게 늘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실상 리셋 후 재도전을 강요한다고 봐도 틀린 건 아니겠지요. 취향 차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점 또한 결코 좋게 여길 수가 없었습니다.


만트라는.... 제 견문이 부족했음을 통감하게 되었군요. FF 시리즈는 7편 이후로는 하나도 안 해봤기에, 처음 만트라를 보고 '와 이거 신기하고 좋네~' 했다가 나중에 '그거 베낀건데....' 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황당했습니다. 여기 자주 와 주시는 오마케씨 말마따나 파판 10의 스피어 시스템의 마이너 카피 같은 걸 당당히 내놓고 자랑스러워 하다니, 기가 찰 따름입니다.


뭐 그 외에도 타격감을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을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간단합니다.

본작의 시스템은 예쁘고 보기좋고 깔끔하게 보이지만, 그 실체는 여신전생이라는 시리즈가 갖는 소위 성깔을 무자비하게 거세하고 희석시켜서 평준화시킨, 복제품들의 조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전의 작품들이 가지고 있었던 '여신전생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요소들이 대량으로 삭제당한 자리에 남은 것은 흔해빠지고 평범한, 굳이 아틀러스 아닌 다른 누구라고 해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대량생산된 동인 게임이지요. 그나마 게임으로서의 완성도는 유지하고 있는 것은 원본이 워낙 걸작이었던 덕분일 것입니다.

(계속)

-이 포스트는 사교의 관 게시판에 올렸던 내용을 재편집하여 올린 것입니다-

덧글

  • 마아루 2004/08/30 14:32 # 답글

    호오~그랬군요..전 뭐 파판의 그 스피어 시스템때문에 조절을 한두번 한게 아니어서..(생노가다,,,ㅠ,ㅠ) 여신전쟁은 그 살인적인 난이도에 (듣고만)좌절..아직 한번도 안해봤는데..
    자금 여유만 풀리면 함 해봐야 겠네여,
  • MATARAEL 2004/08/31 14:06 # 답글

    마아루님 > 많이 씹어놓긴 했지만, 본문에서 말했듯이 그럭저럭 기본은 되는 게임이긴 합니다. 스토리가 좀-_- 그렇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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