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erness 4/5권 감상

주문했던 Wilderness (국내판 제목: 런어웨이) 5권이 예정보다 일주일쯤 빨리 입수되었기에 이전의 4권과 합쳐서 감상을 올려봅니다. 실은 입수 당시에 언급 안하고 잊고있던 김에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했던 4권 감상이지만, 기다려주시는 분이 계시니 의리상 그럴 수가 없군요. (이렇게 적절한 시점에 콱 찔러주실 줄이야!)

Wilderness 4권
표지를 보고는 마치 '007 다이 어나더 데이'에서처럼 세루마와 에나의 수갑 액션이 펼쳐질 것이라 예상하셨다면 낚이신 겁니다. (...) 뭐 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건 사실이긴 하지만.

두 차례에 걸친 대규모 총격전을 겨우 빠져나온 수배자 3인조가 또다시 에놀라와 아슬아슬하게 엇갈리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번 4권이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은, 종전의 싸움에서 마카로니 킬러 중 한 명을 사살한 에나가 뒤늦게 겪는 심리적 공황상태에 대한 묘사입니다. 사실 웬만큼 망가진 정신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살인이라는 행위는 가해자의 정신에도 큰 타격을 주게 마련입니다. 철저하게 훈련받은 경찰들도 범인을 사살한 후 쇼크에 빠지는 일이 적지 않은데, 하물며 얼마 전까지 평화롭게 살던 10대 소녀의 경우라면 두말할 것도 없지요.

이토 아키히로와 같은 화려하게 부수고 터뜨리는 액션을 그리는 만화가가 이러한 심리상태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의외라고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시도야말로 '총격전의 마에스트로'를 더욱 마에스트로답게 만들게 해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최근의 지오브리더스 10권에서, 단 한 발의 권총탄을 맞은 타바가 느끼는 끔찍한 고통과 공포에 대한 집요한 묘사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지요. 일본쪽 사이트에서 본 표현을 인용하자면 '한 발의 총알의 무거움도 잘 알고 있다' 라고나 할까요.

방황하던 에나는 그녀를 쫓아온 세루마와의 대화, 그리고 브로우튼이 파견한 새로운 킬러 '스미스'와의 격전을 통해 다시 일어섭니다. 동류의 상처를 짊어진 사람과 진심이 담긴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을 납득시키는 한편, 생사의 갈림길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강렬한 분노를 원동력 삼아 쇼크를 극복하는 이러한 과정은 매우 설득력있고 매끄럽게 그려지면서 4권의 이야기를 적절하게 끝맺고 있습니다.


그러나 4권의 이러한 전개는 한편으로 1권에서 3권까지 이어져오던 물흐르는 듯한 진행 페이스를 흐트러트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이 작가는 1권과 2권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해버렸으니 앞으로는 볼 것도 없잖아?" 라는 2ch에서의 비아냥은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하더라도, 이 시점에서의 진행에 대한 반응이라는 점에서 한번쯤 귀를 기울여볼 가치는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2권 분량 정도의 전개가 이야기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시기가 되리라 생각되는 바, 부디 이토 아키히로 선생의 분투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그 외에는

- 최강의 멕시칸 쌍권총 소년 'D'는 이번 권에서 도를 지나친게 아닌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강함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의 터프함은 이 정도로는 끝나지 않으니 5권을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 중간중간에 골드스미스가 공포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방식에 대한 묘사나, 에나가 쫓기게 된 계기에 대한 언급도 흥미를 돋굽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이후의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듯.

- 브로우튼 조직의 새로운 킬러 스미스는 이전과는 달리 완벽한 프로페셔널로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약간 맛이 간 모습을 보여주는게 '역시 브로우튼 계열이구나' 하는 생각은 들지만서도. 하여간 그의 철두철미한 저격 장면은 4권 총격전 신의 백미입니다.

Wilderness 5권
4권이 세루마와 에나가 중심이었다면, 이번 5권은 표지가 말해주듯이 에놀라 팀의 이야기가 주가 됩니다.

신뢰하던 부하인 짐을 잃고 돌아가려던 에놀라는 세루마의 행적을 포착했다는 D의 말에 따라 귀국을 포기합니다. 울며겨자먹기로 같이 남게 된 로젠만의 거듭된 뒷공작으로 인해 DEA 내에서 자신의 입지가 최악의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세루마 추적을 계속하는 에놀라. 그녀를 제지하기 위해 현지의 제약시설에 배치된 골드스미스의 부하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때마침 호리타 3인조도 이곳으로 접근하기 시작하면서 각자의 접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접전 중에 치명적인 위기에 빠진 에놀라의 운명은 어찌될지?


작가 자신이 언급하고 있듯이, 이번 5권은 좀 밋밋하게 전개되는 편이었습니다. DEA 내부에서의 알력이라던가 로젠만의 꿍꿍이, 인물들 사이의 신경전이 주된 내용이다보니 이런 경향이 컸던 것 같군요. 이후의 내용부터는 지금까지 쌓아두었던 탄환들을 대방출할 예정이라고 하니, 6권에서 다시금 시원하게 터뜨려주길 기대해야겠습니다. 그래도 막판에 의외의 인물이 끼어들어오면서 사태를 더욱 꼬아버리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손뼉을 치게 만드는 절묘함이 있었군요.

- D는 여전히 날카로운 판단력과 함께 더욱 더 무지막지한 전투방식을 보여줍니다. 쪼끄만 놈이 힘도 좋지;

- 미워할 수 없는 3류 악당인 미스터 알바레스, 3권의 영화제작소 인물들과 함께 '유쾌한 인물들은 심각하게 다치지 않는다' 라는 법칙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 앨런이 잠깐이지만 멋진 면을 보여주는군요. 장하다 앨런! 이전에 한번 띄워준 보람이 있다 앨런!

- 벨스타 강도단- Lawman - 지오브리더스를 통해서 독자들의 미움을 한몸에 받을만한 악역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연구를 거듭했던 작가의 노력이, 드디어 로젠만이라는 캐릭터로서 완성되고 있습니다. 으햐- 저 교활함과 뻔뻔스러움과 사악함이란 정말!! 아마도 거의 스토리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면서 밉살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거라는 예상이 드네요.

덧글

  • NOT_DiGITAL 2006/12/02 09:52 # 답글

    현재 5권이 물건너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죠. 앨런과 알바레스의 등장에 기대를! 로젠만은 확실히 미움받기 위해 태어난 캐릭터죠. 그 어디를 보나 호감이 안가는 캐릭터 메이킹은 확실히 일품.(...)

    NOT DiGITAL
  • DSmk2 2006/12/02 12:08 # 답글

    짐이 죽은게 너무 아까와서 로젠만 ㅅㅂㄻ를 외치고 있었는데 다들 싫어하시는군요. 작가로 봐서는 캐릭터를 만드는거에 성공했다고 해야하나... 아마 바퀴벌레 처럼 마지막 까지 살다가 총 한방에 죽을거라고 확신합니다.

    슈퍼울트라짱센 D가 얼마나 활약을 해줄련지... 국내판 5권이 빨리 나오기만을 바랄뿐입니다.
  • 멍멍순이 2006/12/04 00:57 # 삭제 답글

    카아 잘봤습니다
  • 양재천너부리 2006/12/07 00:14 # 답글

    스미스......무려 식스센스의 소유자더군요.....
    4권에서의 맛간 모습의 의문이 풀렸습니다. 덜덜덜........
  • MATARAEL 2006/12/08 13:47 # 답글

    NOT_DiGITAL 님 > 실은 대단한건 아니고 그냥 한번씩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긴 했는데 그게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들었던 정도이긴 합니다.

    DSmk2 님 > 사실 로젠만은 이리에와는 다른 방향으로의 접근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요즘 지오브리 연재분에서 완성되어가고 있는 이리에의 모습은 어디까지나 냉철하고 무감동한 악당의 모습인게 로젠만의 인간적(?)이고 찌질한 모습과는 다른 영역이거든요.

    그래도 한국판이 계속 잘 나오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4권은 못봤는데 말투 재현은 좀 매끄러워졌나 모르겠네요.

    멍멍순이님 > 잘 봐주셨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애용해주세요~ (웬 영업멘트)

    양재천너부리님 > 차를 타고 갈때의 그 장면이라면, 식스센스(...)라기보다는 4권에서 세루마와 에나가 보았던 이미지와 동류의 것이라고 봐야 할겁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스미스가 늘상 말을 거는 그 '상대'는 일종의 동료인 것 같거든요.
  • 양재천너부리 2006/12/08 23:11 # 답글

    그...그러면 안네 프랑크입니까......(이런!!)
  • MATARAEL 2006/12/09 19:11 # 답글

    그렇습니다. 뭔가 스미스에게 안 어울리는 귀여운 비유이긴 하지만 일종의 안네 프랑크스러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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