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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계사' 최고의 조연을 뽑자면
(결계사 단행본 12권까지의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애니메 / 게임화가 진행되고 소학관 만화상까지 수상하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결계사'. 화려하거나 안이한 세일즈 포인트를 노리기보다는 이렇게 우직하게 이야기를 쌓아올려나가는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소식입니다.

결계사라는 만화의 매력들 중 하나는 얼핏 수수해보이면서도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입니다.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게 즐거운 올곧은 소년 요시모리,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겸비한 소녀 도키네라는 주인공 콤비는 물론이고,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조연 캐릭터들도 역할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확실한 색깔을 갖고 이야기를 만들어가지요.

그러한 조연 캐릭터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조연을 한 명 꼽자면 바로 이 사람입니다.




요시모리의 할아버지 시게모리의 오랜 친구인 통칭 '이계애호가' 마츠도 헤이스케.

사실 그는 등장 초-중반까지만 해도 이야기의 중심에서 한발짝 물러난 조언자, 방관자로서의 인상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흑망루 측 자객에게 암살당하면서 그냥 좀 특이했던 영감님으로서 싱겁게 퇴장하는 것처럼 보였지요.

하지만 이는 추격을 피하기 위한 일시적인 위장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도시의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춘 마츠도 헤이스케는, 바야흐로 흑망루와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려 하는 시점에,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한 강대한 사역마 '카가미군'을 거느리고 이야기의 중심으로 화려하게 뛰어듭니다. 노리는 것은 단 한 명, 일생을 바쳐 사랑한 여성의 남편이자 일생을 바쳐 증오해온 옛 친구인 흑망루의 고위 간부 '뱌쿠'....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무리하게 길게 끌려는 실수는 하지 않았고, 그가 흑망루에 침입해 자기 나름대로의 결말을 낼 때까지의 내용은 단행본 반 권 분량이 될까 말까입니다. 그러나 덕분에 마츠도와 뱌쿠가 보여준 짧은 단막극은 허무, 동경, 집착, 증오, 비탄, 광기, 분노, 절망, 회한 등 인간의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치면서도 간결하게 마무리된, 대단히 밀도가 높은 이야기로 완성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되네요.


그리고 또 한 명 -과연 '명'이라고 부르는게 옳은 표현일지는 의문이지만-, 마츠도 헤이스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그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조수 '카가미군'입니다.
이 아름답고 우아해보이는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됩니다. 그녀의 정체는 수많은 금술(禁術)을 섭렵한 마츠도가 계약을 맺은 이생물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권능을 지닌 고위 악마. 그 힘은 흑망루의 실력자인 시온조차 '자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생물'이라고 평할 정도이며 뱌쿠를 일격에 쓰러트리는 모습으로 봐서는 전성기때의 '공주'와 맞먹지 않을까 싶군요.

평소 정성껏 마츠도를 돌보는 조수라는 역할을 연출하고 있는 카가미군이지만, 그러한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뒷면에는 계약과 지혜로 악마를 복속시키는 인간과, 언제든 계약자가 방심하는 순간 계약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상대를 배신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악마라는 관계에서 비롯된 팽팽한 긴장감이 숨어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한편으로는 좌절한 마츠도를 따스하게 보듬어주는 등 자신의 목적과 일치되는 한 얼마든지 상냥해질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반된 성격이 가져오는 모순은 그녀가 지닌 악마적인 매력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나아가서 마츠도 코우헤이라는 인간이 지닌 광기와 어우러지면서 캐릭터의 깊이를 한층 더해주는 효과를 가져다 줍니다. 수백년 전부터 애용되어온 '악마와 계약한 인간의 운명'이라는 클리셰에는 항상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파멸적인 힘이 있는 것이지요.


비단 이들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캐릭터들이 마지막을 맞이하거나, 나름대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려내는 '흑망루편'의 결말을 참 좋아합니다. 사실 이만큼 판을 벌여놨으면 조금 더 길게 끌어보고 싶은 욕심이 들어도 이상할 게 없을텐데 적절한 부분에서 정리하는 과감성이, 이 타나베 옐로우라는 작가가 많은 기대를 받는 이유 중 하나이겠지요. 최근에 들어서도 TV 애니메화 등의 상황에 영향받지 않고 차분한 전개를 보여주는 그인만큼, 섣부르게 인기에 휘둘리다가 자멸한 몇몇 작가들의 전철을 밟지 말고 계속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by MATARAEL | 2007/02/25 16:30 | 만화광 시대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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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hatty at 2007/02/25 21:18
밸리에서 제목보고 왔습니다-이거 처음 2권 볼 때 까지만 해도 그냥 조금 특이한 소재의 드라마라고 생각했는데, 보면볼수록 점점 빠져들게 되더군요. 저도 그 뚝심있는 전개가 참 맘에 듭니다. 캐릭터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자잘하게 하지않기 때문에 그 전개력(??)이 더해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빨리 다음권~
Commented by DSmk2 at 2007/02/26 00:21
카가미군 정말 좋아합니다. 특히 저 팔을 X자로 교차하는 저 포즈는 베스트죠.
Commented by BLUE-PSY at 2007/02/26 16:24
오. 끌리네요.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 동네 책방에서 진여신전생-칸을 발견한 사람
Commented by 풍신 at 2007/03/02 08:08
마츠도 헤이스케 정말 멋진 영감이죠. "관객이 되는것도 용서치 않겠어.", 크으...

결계사, 매일밤 괴수들과 싸우는데도 어딘가 단순한 일상이라고 느끼게하고, 어느정도의 개그요소도 넣고 지내다가, 갑자기 한건하고, 다시 일상생활, 한번씩 크게벌이죠.(작가가 복선을 넣을 타이밍도 알고 있는듯...)

나아가...결계술 자체도 꽤나 오리지널적인 요소가 듬뿍들어있는...
Commented by MATARAEL at 2007/03/11 23:04
shatty님 > 연재 극 초반에는 '샤먼 시스터즈'(국내판 제목)처럼 잔잔한 생활요괴이야기 (...) 노선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점점 커다란 싸움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옮겨가더군요. 종종 이런 전환과정이 뜬금없거나 억지스러운 경우도 많은데 결계사의 경우는 매끄럽게 잘 연결된것 같아요.

DSmk2 님 > 저는 달려드는 뱌쿠의 부하들을 열풍회전베기로 휭휭휭 베어버린 후 선생님을 옆에 태우고 오똑 선 모습이 더욱 큐트했....

BLUE-PSY님 >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 손에 들고 계신 진 여신전생 칸은 저~쪽 구석으로 힘차게 던져버리시고 -"Fire in the hole!!"- 결계사의 재미에 빠져보시길 권합니다.

풍신님 > 결계술이라는 술법에 대한 발상 자체도 재미있지만, 때로는 사소한 일상도구가 되고 때로는 무서운 무기가 되는 '힘'으로서의 양면성을 자연스럽게 잇는 솜씨도 훌륭합니다. 더불어 여기에다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카라스모리의 비밀까지 연결시켰기도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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