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마 관련 몇 가지 심심한 잡설

아래의 포스팅이 이 정도로까지 열렬한 반응을 얻을 줄은 몰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만큼 란마 1/2이라는 작품이 아직도 많은 분들의 가슴 속에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불후의 명작이라는 거겠죠.

그런 작품을 갖고 고작 한다는 게…

………

맹호낙지세 맹호낙지세.



기왕 이렇게 된 김에 평소에 묵혀두던 란마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나 몇 가지 더 풀어 봅니다..


0. 퍼스트 콘택트

제 경우 란마를 처음 보게 된 것은 ‘권법소년 황금봉’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해적판이었습니다. 국민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시절 사이의 언젠가의 시점이었는데, 부모님 따라서 야유회 비슷한 거 같다가 다른 집 애가 들고 온 걸 우연히 읽어보고는.

그야말로 컬쳐쇼크를 받았죠.

기상천외한 매력을 지닌 주인공과 히로인이 만나서 대판 싸우는 도입부, 정신 없이 독자를 빨아들이는 전개 후 마지막에는 아카네에게 업혀서 돌아오며 동풍 선생의 말을 떠올리는 란마의 모습…. 요즘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아무렇지도 않을 장면들이지만, 그런 류의 감성을 미묘하게 자극하는 전개에 면역이 없던 시절에는 엄청난 충격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학생의 감수성이란 무서운 거예요.
(제가 미연시 엔딩 보고 통곡하는 중딩들의 이야기를 보고 웃으면서도 차마 까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1. 텐도가 3자매

과거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해두고. 여러분은 텐도가 3자매 중에서 누굴 가장 선호하시는지? 제 경우는 둘째인 나비키 파입니다. 제일 현실적이고 머리도 잘 돌아가고, 흑심을 품고 있을 때 한정이지만 은근히 애교도 있거든요. 도장을 잇게 되면 팔아 치우고 그 돈으로 놀고먹는 게 꿈이라고는 하지만, 원래 이런 인물이 장기적으로 편하게 살기 위해서 더 알뜰하게 기반을 쌓아놓는 법. 아앗, 이것은 롬멜이 말했다고 전해지는 4종류의 타입 중 지휘관에 어울리는 인간형인 ‘똑똑하고 게으른 타입’이군요?


그런데 실은 작품 중에서 은근히 나비키랑 쿠노가 많이 엮이는 편이고, 이런 분위기는 캐릭터 송에서도 이어지고 있더군요. ‘쿠노가 오고 있어요’ 에서는 쿠노쨩 쿠노쨩을 연호하는가 하면, 코다치의 ‘기능변태쇼’를 쿠노와 함께 보러 가서 딴지를 걸지 않나, ‘이 세상에서 설날이 제일 좋아’에서는 세뱃돈을 1만 엔씩 뜯어내기도 합니다. (그걸 또 투덜대면서 달라는 대로 주는 쿠노…)

확살히 나비키 x 쿠노 커플이라면 납득할 수 있습니다. 아래 설정에 따르자면 싸나이지만 실제로는 그냥 변태인 쿠노 다테와키도 나비키가 제대로 키워주면 멀쩡한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그녀 정도라면 변태 시아버지와 변태 시누이조차도 한방에 틀어잡아버릴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2. 쿠온지 우쿄

텐도가 이외의 캐릭터로까지 범위를 넓혀보자면…. 역시 오코노미야키 아가씨인 쿠온지 우쿄가 최고 아니겠습니까? 일단 남장 미소녀 배수법 (*주1)을 받고 시작하는 데다가 등장인물 중 가장 생활력 있고 성격도 시원시원하며 딱 부러지는 데가 있는 당찬 아가씨, 그러면서도 은근히 순정파거든요. 나름대로 란마를 노리고 꿍꿍이를 꾸밀 때도 있지만 음험하기보다는 귀여운 장난 수준에 그치고, 실제로 란마와 아카네 양쪽에게 좋은 친구로 인식되고 있죠.

날이 갈수록 본편의 비중이 적어지면서 나중에는 샴푸-코다치와 함께 3명 세트로 취급될 정도지만, 그래도 온갖 캐릭터들이 망가지던 격투가 카루타에서 ‘오코노미야키에 쓴 러브레터’를 무사히 열창했으니 나름대로 선방한 셈일지도?

근데 키가 178이라니 꽤 크군요….(*주2)

* 주1) 남장 미소녀 배수법: 일반 미소녀 한 명의 효과는 +1. 하지만 남장 미소녀의 경우 처음에는 미형 남자 캐릭터로서 -1 효과를 주던 성가신 경쟁자가 미소녀로 정체가 밝혀지면서 +1 로 전환되므로, 결과적으로 +2 가 된다는 점에서 일반 미소녀보다 배로 우월하다는 계산법.

* 주2) 하지만 이건 잘못된 정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이전에 위키에서 쿠온지 우쿄 페이지를 봤을 때는 신장 178cm 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오늘 다시 들어가보니 해당 내용이 삭제되어 있더군요.

3. 란마의 파멸적인 인간관계

본편을 읽다 보면 란마가 새삼 불쌍하다고 느껴지는 게.

속 시원하게 고민 상담할 친구나 어른이 없어요!

………

주변의 어른이라고 해 봤자 아버지도 교사도 스승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극초반에 제일 믿음직하던 동풍선생은 급속하게 공기화 되어버렸고 어차피 이 사람은 카스미가 뜨면 정신줄을 놓으니 소용이 없죠. 결국 믿을 만한 건 카스미 뿐이고 사실 란마도 카스미 말은 얌전히 따르는 편입니다만… 어쨌든 여자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고집스러운 면이 있다 보니 그것도 한계가 있더군요.

동년배로 오면 더욱 파탄상태. 남자는 모두 적이며 여자는 흑심을 품거나 무관심한 태도입니다. 물론 료가가 빈력허탈뜸 에피소드에서 의외의 도움을 주긴 했지만 어차피 그건 무술바보로서의 본성이고… 게다가 여러분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히 대답해 보세요. 료가한테 인생 상담하고 싶어요? (……)

결국 란마에게 동년배 중에서 그나마 친구라고 할 만한 건 역시 우쿄 정도일까 싶습니다. (그녀 입장에서는 불만족스럽겠지만)


4. 음악 관련

‘란마와 아카네의 발라드’
사실 란마와 아카네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이 곡은 그 자체로 팬들을 위한 하이개그라고 봐야 할 겁니다. 웅장한 반주와 코러스까지 넣은 버전에서는 아예 대놓고 서로의 이름을 외치면서 부르는 대목을 넣어서 개그임을 강조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너무 오버해서 그런지 일반 버전의 능청스러운 정도가 딱 좋은 것 같습니다.

‘무지개와 태양의 언덕’
재수하던 시절 여름에 땀 뻘뻘 흘리며 학원 다닐 때 대량의 란마 음악 테이프를 들고 다니던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란마의 노래들은 왠지 모르게 ‘여름’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런 곡들 중에서 요즘 들어서 유난히 귀에 남는 곡.

'태양의 냄새가 나요 당신의 꿈도 셔츠도' 라는 가사는 의외로 구글 재팬 검색어 자동완성에도 등록되어 있더랩니다. 하지만 노래를 부른 '피요피요'는 앨범 두개 내고 2000년 이래로 활동 없음....

‘맑고 올바른 크리스마스’
노래 중에 무려 카스미가 부르고 잇는 ‘당신이 입는 파자마가 되고 싶어’ 라는 리비도에 찬 가사가 옛날부터 매우 신경이 쓰였습니다…

'절대! Part2'
굉장히 기운차고 경쾌한 곡이라서 왠지 응원가 분위기가 나지만 실제로 응원가로 쓰인 일은 없겠죠.

'사랑이 하나 사라져 버렸어요'
좀 가라앉은 분위기인 해도 멀쩡한 곡인데, 뮤직비디오에서는 DOCO 멤버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서서 이쪽을 쳐다보면서 노래부르는게 난데없이 호러 분위기입니다.

준비- 땅!

달력을 테마로 만들어진 캐릭터송 앨범 가력(歌曆)의 10월에 해당하는 곡. 란마를 걸고 샴프,우쿄,코다치,아카네 4명의 소녀들이 운동회에서 승부를 벌인다는 내용의 캐릭터 송입니다. 짤막하면서도 경쾌하게 각자의 성격을 보여주는 곡이라 좋아하는데요, 특히 앞의 3명이 제각기 떠든 뒤 마지막에 아카네가 잔뜩 골난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하면 될 거 아냐!' 라고 말하며 투지를 불태우는 소절은, 비록 제가 우쿄 팬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히로인은 아카네라는 사실을 새담 깨닫게 하는 묵직한 한방이지요.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아래 url 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http://nicosound.anyap.info/sound/sm7985046

그 외에 뭔가 더 있었던 것 같지만 여기까지.

덧글

  • 작가 2010/07/16 22:51 # 답글

    나중에가면 주변 엑스트라들이(주로 반 남자놈들) 남자 란마나 여자 란마나 동등하게 란마취급 하는거 보고 카오스 월드라는 것을 느낌.
  • MATARAEL 2010/07/17 21:23 #

    엇 그건 그럭저럭 정상적인 반응 아닌가요? 알거 다 아는 사이에 새삼스럽게 여자 모습 되었다고 여자취급 해주면 그게 더 카오스라고나 할까 미트스핀스럽다고나 할까...
  • JOSH 2010/07/16 22:55 # 답글

    > 근데 키가 178이라니 꽤 크군요….

    헊!
  • MATARAEL 2010/07/17 21:26 #

    저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위키에서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루저들은 감히 넘보지 못할 우쿄님의 위엄....
  • M2SNAKE 2010/07/16 23:13 # 답글

    란마 관련 음악이라면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룁니다 아카네상;;;이군요 ㅎㅎㅎ
  • MATARAEL 2010/07/17 21:27 #

    가사를 기억해두면 일본 편지문 형식에 대해서 헷갈릴 때 큰 참고가 됩니다.
  • NOT_DiGITAL 2010/07/16 23:46 # 답글

    우쿄 좋지요. 그런데 키가 178이었다니...(먼산)

    그러고보면 란마 보컬곡들도 어린 시절 참 많이 들었네요.

    NOT DiGITAL
  • MATARAEL 2010/07/17 21:30 #

    저도 열렬한 란마 팬이었던 친구가 녹음해준 덕분에 각종 음반 별로 끝없이 듣고 다녔습니다. 그때 테이프들은 지금도 바로 옆에 꽂혀있네요.
  • 물빛고양이 2010/07/17 01:03 # 답글

    란마 노래중에 아카네가 미친듯이 란마노바카!! 하고 울부짓던게 있었는데...그게 가장 인상 깊었던 듯 합니다.
    란마 보고 반해서 검도를 시작했었던 어릴적 기억이 아른해요.
  • MATARAEL 2010/07/17 21:32 #

    '상냥하고 착한 애가 될 수 없어' 라는 제목이라서 멀쩡해 보이지만 강렬한 가사와 혼신을 담은 연기로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곡이긴 하죠.

    특히 중간에 아카네가 추임새로 넣는 기합소리가 워낙 싸나이다워서 감동했습니다.
  • 풍신 2010/07/17 17:18 # 답글

    확실히 나비키라면 밴태 교장과 변태인 격투 체조 선수를 마음껏 갖고 놀 수(?) 있겠군요. 우쿄는 그래도 개념 탑재 캐릭이죠. 란마에 대한 분노도 타당한 선이었고...

    확실히 란마 근처에 제대로 존경할만한 연상의 인간은 카스미와 동풍 선생...(그나마 제대로 도움을 주는 사람도 동풍 선생...)...코롱 요괴 할멈은 미묘한 위치려나요.
  • MATARAEL 2010/07/17 21:48 #

    어쩌면 나비키는 의도적으로 교장과 코다치를 멋대로 놀게 냅둔 후 집안을 장악할 것 같습니다. 거의 아침드라마 수준의 모략이 벌어질지도...

    코롱 할멈은 좋은 조언자이긴 하지만 샴푸가 엮인 건에 들어가면 역시나 신용 못할 요괴이죠.
  • 2010/07/27 21:1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MATARAEL 2010/08/05 20:57 #

    국내 사정과는 상관없이 꾸준히 새로운 제품들은 나와주는군요. 정작 저는 4-5년 전에 나왔던 다른 제품을 이제야 구해볼까 하다가 좀 찾아보고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는 중이네요.
  • 구우사마 2010/09/05 01:45 # 삭제 답글

    사실 보면서 란마가 왠지 불쌍하다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인간관계때문? 이였을지도 ㅋㅋㅋ
댓글 입력 영역


Contact

사교의 관 web 폐쇄

PSN ID: Salamis_k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