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계의 전기 4 -삐걱이는 시공-


성계의 전기 1권은 문장편 마지막에서 시작된 전쟁에 의하여 잠시 연합군 측으로 기울었던 균형이, 성계군 측의 반격 작전으로 인해 제국 쪽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내용을 그리고 있습니다. 2권의 진행 또한 전체적인 전황에 있어서는 그 연장에 해당하고, 이어지는 3권은 반격의 첫 단계가 성공한 시점에서의 일시적인 휴식과 준비 기간이라고 보면 되겠지요.

시점을 주인공과 그 주변으로 돌려본다면 1권은 다시 만난 두 사람의 조금은 달라진,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변함없는 관계를 보여주면서 새로운 주변 인물들의 모습도 비추고 있습니다. 2권에서는 라피르가 자신의 신분과 책임이 어떤 것인지를 보다 실질적으로 경험하고, 한차례 성장하는 한편 진트와의 관계도 미묘하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3권은 영주로서의 자신의 입장을 정면으로 받아들일 결심을 한 진트가 고향을 방문해 오랜 고민에 나름대로 매듭을 지으며 역시 성장하는 과정이 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발매된 성계의 전기Ⅳ -삐걱이는 시공-. 이번 4권은 새롭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서장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3권에 대해서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고 게다가 그 이후로 공백도 길었기에, 좀 불안한 감이 있었습니다. 하도 신간 소식이 없길래 이러다가 소멸해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다 읽고 보니 전기 1권 시절의 감각이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아서 안심입니다. 비록 내용이 좀 짧고 중간중간에 어색함이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작가 자신이 슬슬 이전의 페이스를 되찾아가는 듯하니 이후를 기대해봐야죠.

이번부터는 라피르가 신형 함종인 습격함의 함장이 되면서 돌격함 시절과는 다른 양상의 전투가 전개됩니다. 각각 다른 상황에서 벌어지는 습격함의 전투 장면이 두세번 정도 나오는데, 묘사가 밀도가 있고 박진감있는게 흥미진진합니다. 중량감이 있어서인지 저는 확실히 돌격함보다는 이쪽 전투 스타일이 마음에 드는군요. 또한 라피르의 동생인 도히르의 눈을 통해서 이제까지 별로 언급되지 않던 전열함에서의 생활상도 약간 볼 수 있긴 합니다만, 확실히 임무가 임무이다보니 이쪽은 정말 무미건조. 그야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뒤에서 기뢰 쏘아댄 뒤 물러나는게 임무이긴 하니.... 한편으로 수뇌부 측에서는 이런저런 밀약과 협상과 논의를 거치면서 전쟁의 국면 자체에 큰 영향을 줄 새로운 작전을 결행하게 됩니다. 아마도 앞으로 나올 5권은 처음부터 상당히 급박하게 전개될 거라 예상됩니다. 3권 시절처럼 느긋하게 지낼 일은 한동안 없지 않을까요?

성계 시리즈 특유의 장황한 수사법을 사용한 대화 스타일은 여전히 자주 나옵니다만, 글쎄요. 이런 스타일의 언쟁이라고도 잡담이라고도 하기 미묘한 대화 스타일은 작가에게 충분한 센스가 있다면 화려하고 재치있는 대화를 그려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냥 싸이코로밖에 안 보일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작가는 그동안의 공백이 길어서인지, 이전의 절묘한 평형 감각이 많이 무뎌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베르소트 함장이 도히르를 어설프게 놀려대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스폴이 크파디스를 기막히게 갖고 놀던 장면과 아무래도 비교가 되는군요. 5권에서는 부디 이전의 깔끔한 센스를 다시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불만점이 몇 가지 있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을 기다린 보람이 충분히 있는 한 권이었습니다. 총 248페이지로 시리즈 중 제일 얇기는 하지만, 문장 3편이 문고판 기준으로 총 270페이지였던 걸 생각하면 그렇게 심하게 짧은 건 아닙니다. 아무래도 오래 기다린데다가 한참 재미있는 부분에서 끝나서 그런 느낌이 드는 걸지도 모르지요. 이야기의 전개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고, 다른 곳에서 본 소문으로는 6월 정도면 다음 권이 나온다고도 하니 마음껏 5권을 기대해도 될 것 같습니다.



에... 이대로 끝내기도 뭐하니 이번 내용에 대한 몇가지 잡설. 무차별적으로 내용 누설이 시작되므로 주의하시길.







1. 지금까지 중립을 지켜오던 하니아 연방이 제국 측으로의 투항을 은밀하게 제의해옵니다. 이 경우 지켜야할 영역이 지나치게 넓어지면서 수도 락파칼의 방어가 허술해지게 되는 리스크가 있지만, 성공할 경우 3개국 연합의 연쇄붕괴를 유도하여 전쟁을 조기종결시킬 수 있다는 잇점 때문에 결국 이 조건은 수락됩니다. 그리고 성계군이 하니아 연방의 접수를 위해 이동하기 시작한 시점에 하니아 연방의 주력함대가 수도 락파칼을 향하여 진군하기 시작합니다.

예, 완벽하게 뒤통수를 맞았군요. 본진 방어병력까지 다 끄집어내서 멀티 접수하러 보냈더니 본진에 대규모 드롭 들어오는 상황입니다. 락파칼이 단순한 수도가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간 제국을 중심에서 연결시키는 역할임을 감안하면, 제국 자체가 조각조각 갈라져서는 각개격파당할 가능성도 충분한 대단히 위험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그러게 그렇게 간단히 낚시질에 걸리면 안되죠 쯧쯧. 수도 방어가 뻥 뚫리게 된다는 이야기 나올때부터 이거 수상하다 싶었는데 역시나....

확실히 하니아 연방은 3개국 연합으로부터 배신자 취급을 받고 있기에 이제와서 그쪽에 합류한다고 해도 좋은 꼴을 못 보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자국의 영토 전체를 제국에 내어주면서 수도를 함락시킬 수 있다면 상황은 다릅니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전쟁에서 밀리고 있던 3개국 연합 측이 큰 빚을 지게 되는 상황이기에, 승전 후의 협상에서도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겠지요. 게다가 성계군의 스타일로 볼 때 점령당한 자국 영토가 대단한 보복을 당할 거라고 생각하기도 힘드니, 사실상 손해랄 것도 없겠고. 제국의 신임 재상은 너무 이상적인 면만 생각하다가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군요. 다음 권에서는 잘리려나?

2. 3권에서 진트를 경악하게 했던 에크류아의 기괴한 노래에 얽힌 과거가 밝혀지다.... 개인적으로 3권의 그 사건은 작가가 갈수록 성계판 아야나미가 되어가는 (사실 맞는 말인데) 에크류아에게 뭔가 나름대로의 특징을 부여하려고 억지로 끼워넣은 이벤트 같아서 좀 민망하더군요. 하지만 이렇게 어설픈 변명까지 하는 거 보니 더욱 민망합니다. 질질끌면 더욱더 민망하니까 웬만하면 이정도로 끝내기를^_^

3. 3번째 전투인 습격함 전대의 통상공간 고속일격이탈전투. 4권 전투 신의 백미입니다.

4. 그나저나 주역들의 러브러브가 현저하게 부족합니다. 지난 3권에서는 시댁(뭣이?)에 문안인사도 같이 드리러가더니... 벌써 권태기인가 당신들?

덧글

  • 샤오군 2005/01/16 15:01 # 답글

    아...헷갈리는군요. 최신 포스트를 보다가 들어왔습니다.
    저는 성계의 전기를 한글판 "은하전기"로 봤었는데......
    그때 5권까지 봤던것 같거든요.
    그럼 그건 일본에서의 3권까지의 내용인건가요?
    아......잘 모르겠네요.
  • MATARAEL 2005/01/16 15:42 # 답글

    어서오세요. 한글판과 원판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계의 문장 1권 (은하전기 1권)
    성계의 문장 2권 (은하전기 2권)
    성계의 문장 3권 (은하전기 3권)
    성계의 전기 1권 (은하전기 4권)
    성계의 전기 2권 (은하전기 5권)
    성계의 전기 3권 (이후로는 국내 미발매)

    국내판은 벌써 두권 분량이나 밀려있는 셈이지요. 요즘 NT 노벨 등등 이것저것 많이 나오고 하니 다른 출판사에서 다시 발매할 법도 한데, 별 소식은 없군요.
  • torizan 2005/01/17 23:39 # 삭제 답글

    빌려주게 나도 좀 봅세
  • 만년 2005/01/18 01:16 # 삭제 답글

    내용과는 관련없지만 삽화가 프린세스 메이커 작가삘이 나는데, 혹시 맞는지 봐주셈, 듣기로는 프린세스 메이커 일러스트레이터 가 몸이 죽을정도로 아파서 물러나서 프메4는 시스터 프린세스 메이커가 되는 만행이 생겼다던데..?!!$%$ 이건 뭐야아~?
  • MATARAEL 2005/01/19 15:18 # 답글

    torizan > 그럽죠.

    만년 > 프린세스 메이커의 캐릭터 디자인으로도 유명한 아카이 타카미 (赤井孝美)씨는 성계의 문장 소설판 1권에서부터 표지를 맡는 등 성계 시리즈와 대단히 깊은 연관을 맺고 있지. 일단 소설판 전권의 표지를 맡은 이외에 애니메판과 게임판의 비주얼 컨셉트 등에 손을 대고 있다오.

    프메4 관련의 소문의 진위는 어찌된건지 모르지만, 설령 아프다고 해도 뭐 관계는 없지 않을까. 게임 하나 전체에 손을 대는 것하고, 소설판 표지 하나 그리는 것과는 작업의 규모 자체가 다르니까.
  • 스폴 2006/02/27 01:09 # 답글

    아...정말로 다른 국내 출판사는 뭐하는건지...에휴
  • MATARAEL 2006/02/28 13:49 # 답글

    그야 뭐, 계약을 자기네 쪽으로 돌려서 출판을 하려면 아마도 성계의 문장 1편부터 다시 자사에서 출판해야 할텐데 그렇게까지 할 정도로 성계 시리즈가 잘 팔리는 아이템은 아니라는 거겠지요. 애초에 계약을 했으면 끝까지 출판할 것이지 중간에 튀어버린 은하전기판 출판사 쪽의 잘못이라면 잘못이겠군요.
  • 에크류아 2008/05/19 13:30 # 삭제 답글

    에크류아는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성계에 핵심 요소중에 하나이. 어설프게 판단 말기를...
  • MATARAEL 2008/05/19 14:39 # 답글

    웬지 에크류아 본인이 발끈해서는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 위의 댓글을 달고 있는 모습이 상상되면서 훈훈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진트: "에크류아잖아? 아직도 사고결정단말을 쓰고 있었네. 잔업 처리?"
    에크류아: ".....자신의 정체성과 인지도를 확립하기 위한 물밑작업"
    진트: "헤?"

    에크류아는 얼빠진 표정을 한 진트를 내버려두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단말실을 나섰다. 엇갈리듯이 들어온 라피르는 진트의 얼굴과 그녀의 뒷모습을 미심쩍은 듯이 번갈아 쳐다본 뒤 속삭이듯 질문했다.

    라피르: "진트,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진트: "에,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아, 뭔가 화난 듯한 표정이긴 했지만"
    라피르: "화난 표정? 평소와 똑같아 보였는데"

    잠시 갸웃거리던 제국의 왕녀는, 하지만 금새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피르: "넌 평소에는 둔하면서 묘하게 민감한 구석이 있으니,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진트: "하하.... 칭찬이라고 생각하고 고맙게 받아들일께 라피르"

    멋적게 웃는 진트 뒤편의 단말 화면에서는, <지상인 사고결정망과의 접속을 종료합니다> 라는 안내문자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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